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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의 숲에서 부는 바람

📚 필사 -눈꽃과 침묵 사이에서(곽재구-사평역에서)

by misty sky 2025. 4. 29.

 

 
역전 모습
AI생성 역전
 
곽재구 · 「사평역에서」 필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빗물이 순식간에 우박으로 바뀌었다. 나는 허겁지겁 지하철 역사로 달려갔다.

후두두두 무섭게 떨어지는 진주알 같은 우박이 땅바닥을 구르고 튀어오르는 게 여간 낯설지가 않았다. 

 

역 안에 들어가자 저다마 옹송그리며 선 인파를 보자니 나도 모르게  『사평역에서』라는 시가 생각났다. 언제 읽어도, 눈처럼 싸륵싸륵 내 마음 깊은 곳으로 스며드는 시다.

 

지하철에 올라 메모장에서 이 시를 발견한 나는 오래도록 시를 음미했다.

그러다  습관처럼 그의 SNS를 열었다.

그저 ‘무슨 일 없나’ 정도의 가벼운 클릭이었지만, 화면이 뜨자마자 나는 반사적으로 닫아버렸다.

나는 더는 그 안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한숨을 내쉰 나는 내 SNS 앱을 삭제했다. 친구들 사이에선 SNS가 없는 사람을 거의 원시인과 동급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반감을 가지긴했지만 어째든 적당히 사회에 순응하고 흐름에 뒤쳐지지 말자는 생각에 설치했다. 거의 방치 수준이었다. 그래서 삭제하는데엔 1초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무엇보다 나도 모르게 고착화되어버린 습관을 고치고 싶었다. 

누군가의 흔적을 난로의 불쏘시개가 되어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휴대폰을 가방에 넣고 멍하니 앉아 있는데  진동이 울렸다. 였다.

그는 가끔 뜬금없이 전화했다. 일 얘기인지, 안부인지, 모호한 말들.

 

나는 진동하는 휴대폰을 느끼지 못한 척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맞은편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내 눈에 힘을 주었다.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결정해야 한다는, 나만의 작은 각성.

 

시인은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

침묵해야 한다는 것”

 

을 알고 있다고 했다.

아마도 나는 지금, 그 침묵의 시간 속에 있을 것이다.

 

끝내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내 눈물 한 줌을 마음속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사평역의 대합실처럼, 내 마음에도 눈꽃이 싸륵싸륵 쌓이고 있었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사평역에서 필사 영문
사평역에서 필사, 영문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