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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의 숲에서 부는 바람

필사-「두 번은 없다」비스와바 쉼보르스카

by misty sky 2025. 5. 17.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연습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
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을 때,
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
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었지?
꽃이었던가, 돌이었던가?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 -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


미소 짓고, 어깨동무하며
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를지라도.

💔 

“친구가 최선인 것 같아.”

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의 입꼬리는 덜덜 떨렸으며, 손끝은 쥐고 있던 머그컵을 놓칠 듯 차가워졌다.

이제 그만 나를 중학교 동창생 ‘친구’로 대해달라고 말했을 때,

그 얼굴에 일순 떠오른 당혹스러움과 슬픔은 지금도 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카페 문을 나서며 나를 붙잡는 그의 시선도 외면했다. 나는 무너지는 속도로 걸음을 재촉했다.

그의 마음 깊은 곳을 짓이기며, 나는 그를 배신자라 부르고, 비겁자라 욕하고, 성자처럼 행동하지 말라며 소리쳤다.

“착한 아들 노릇, 의붓엄마에게 살가운 척 잘도 하더라”라는 말까지 뱉고 말았다.

 

정작 나도 그가 천사가 아니길, 위선자가 아니길 바랐으면서.

누구보다 인간적이고 나처럼 상처입은 사람이기를 원했으면서.

 

나는 도망쳤다. 두려워서. 그가 정말 나를 사랑하는 것이 두려워서, 그 사랑을 붙들 자신이 없어서.

사랑을 감당하지 못할 내 자신이 너무도 초라해서.

 

길 위에서 울었다. 빗물에 섞인 눈물은 금세 뺨을 타고 흘러내렸고, 나는 알아채지 못했다.

“두 번은 없다”고, 쉼보르스카가 내 귓가에 속삭이듯 웅얼거렸다.

그래, 두 번은 없다. 그 말이 너무도 절절하고 참혹하게 가슴을 찔렀다.

이제 그와의 사랑은 끝이다. 다시 돌아올 수 없다. 그것이 오늘 내가 내린 ‘형벌’이었다.

🕯 

한 송이 장미가 떨어지던 어제, 나는 그를 사랑했고 그는 내 이름을 부르며 내게 다가왔다.

그러나 오늘, 나는 벽을 향해 얼굴을 돌리고 그 장미를 기억해내려 애썼다.

꽃이었는가, 돌이었는가. 아름다움이었는가, 파괴였는가.

그조차 확신할 수 없게 된 지금, 나는 내 마음이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자리에 몸을 숨겼다.

 

그의 존재는 나를 흔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나를 ‘살게’ 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그와 함께 살 수 없었다.

그와 있으면 나는 나의 어두운 면을, 나의 가식과 열등감과 불안정을 들킬 것만 같아 겁이 났다.

그가 말없이 건넨 다정함조차 나를 죄책감으로 몰아넣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밀어냈다. 내 안에 똬리를 튼 괴물 같은 불안을 안고서.

나는 비틀거렸다. 가로등 불빛이 흐릿한 밤거리, 빗속에서 나는 갈 곳을 잃었다. 다만 걸었다. 어디든 상관없었다.

그는 내가 사랑했던 유일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제 다시는 그 사랑은 돌아오지 않는다.

“너는 존재한다 -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

 

나는 이 문장을 수십 번 되뇌었다. 나도, 너도, 이 사랑도 존재했기에 더는 존재하지 못한다.

그 자리에 놓였기에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너무도 아름다웠다. 너무도, 아팠다.

 

끝과 시작-두번은 없다 수록된 시집
두번은 없다 수록된 쉼보르스카 시집

 

 

두번은 없다 필사
두번은 없다 필사